알람 소리에 깨서 바로 끄고 그 자세로 한참을 있었다. '아침이구나..' 바닥을 뚫고도 남을 만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어째튼 주섬주섬 운동복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나서 몸을 천천히 살폈다. 혹시 어디 아픈 곳이 없을까? 허벅지나 종아리 근육이 안 풀렸거나 어제 터트린 물집이 잘 못 되었거나 발목이 혹시 쑤시지는 않는지 목이 뻐근하지는 않는지... 한 군데라도 아픈 곳을 찾으면 바로 그 핑계로 오늘을 쉬겠다고 내 안의 내가 선언한다. 아무리 꼼꼼하게 살펴보 없다. 다 괜찮다. 실망감이 몰려 왔다. 잠시, 그냥 오늘은 쉬고 조금만 더 누워 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곰곰히 생각했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무엇이 달라질까? 그래 아마 좀 더 누워서 밍기적 밍기적, 그렇다고 푹 잠들것도 아니고 이따 지나보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 나가자!
스트레칭을 정성을 들여 했다. 어제부터 인터벌을 시작했으니 오늘도 인터벌을 해야하는데, 이렇게 몸이 무거우니 천천히 뛰어야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고 아파트 앞에 서서도 천천히 다리를 풀었다. 지나던 경비 아저씨와 인사를 했다.
어째튼 발을 내딛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은 도저히 인터벌을 할만한 컨디션이 아니다. 오늘은 그냥 뛰자. 그냥 5km 정도만, 아산병원앞까지만 휙 다녀 오자. 그럼 충분하다. 아니야, 안돼. 자꾸 예외를 두면 안되는 것이잖아. 오늘은 인터벌을 하기로 했잖아. 마음속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순간 시간은 점점 지나고 이제 곧 첫번째 인터벌 중 빠른 페이스를 달려야 하는 시간이 1분 남았음을 알리는 랜드 암스트롱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할까? 에라..모르겠다..그냥 뛰자.
매일 뛸때마다 다시 느끼는 것은 막상 뛰면 괜찮다. 날씨도 어제보다 더 풀려서 어제 다시 얼었던 잠심대교 수중보 넘어 부분도 오늘 아침은 제법 많이 녹았다.
나이키 플러스로 뛰고 난 후에 아이팟을 컴푸퓨터와 연결을 하면 바로 운동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내 나이키 플러스 계정에 저장이 된다. 그리고 나이키 플러스 사이트에서는 나의 전체 운동 기록과 동시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만든 챌린지에 가입을 해서 서로 경쟁할 수 있다.
얼마전에 새롭게 가입한 챌린지는 2월부터 누가 멀리 뛰나로 챔피언을 가리는 것인데, 내가 어제까지 4위였다. 그런데 앞의 사람들과 거리가 엄청 벌어져 있었다. 내 바로 위의 사람의 운동정보를 클릭해 보니 미국 사람인 듯 한데 최근 달린 거리가 39.5km 에 페이스는 km당 5분56초. 거의 풀코스를 뛴 것이다.
별안간 별 것 아닌, 더군다나 나와는 지리적으로도 상당히 떨어져 있으며 아무런 정보도 없고 더군다나 무슨 올림픽에 출전한 것도 아니면서, 그 기록을 보는 순간 나는 내 상자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속으로 '흥. 이런 마라톤 중독쟁이 같으니..아마 이런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뛰기만 할껄..' 이라는 단 한 점의 근거도 없는 추측을 하며 내 상자안에서 나의 노력과 열정을 높이 사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어떤 미국인의 삶을 비하하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그 순간에는 그런 나의 모습을 인식하지도 못했다. 오늘 아침에서야 뛰면서 느끼는 고통들이 나의 상자를 인식하기 시작했으니. 그러니 얼마나 나와 직접 연관된 사람들과 지낼때 수시로 상자안으로 들어가서 살까? 뛰는 것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그런 반성을 해준 것이 고맙게도 느껴졌다.
어제와 비슷한 기록으로 돌아 왔다.
다만, 어제 터트린 물집이 아프다. 신발을 벗고 보니..물집이 또 잡혔다. 물집 속의 물집인 셈이다. 경험상 이건 매우 아프고 터지질 않는다. 얇고 둔한 겉피부 속의 물집은 쉽게 터트리고 금새 아물지만 그 속살 안에 잡힌 물집은 터트리려면 생살을 뜯어야 해서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닌데... 어쩐지 내일은 이것 덕분에 못 뛸지 모른다는 요상한 희망에 잠긴다.













